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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행회장의 족적
2013.03.20 1,221
  • 년월호 2013년 3월호

월포(月浦) 김정행. 그의 좌우명은 초지일관이다. 올해 70세인 그는 평생을 유도와 함께하면서 용인대에 몸 담았다. 흔히 쓰는 말로 한 우물만 팠다. 뼛속까지 체육인이자 오늘의 용인대를 일군 대학 CEO 총장이다. 그 결과 1958년 유도에 입문한 그는 55년만인 지난 1월 유도인 최고의 영예인 10단에 올랐고 6회 연속 대한유도회 회장에 당선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222일 마침내 한국스포츠를 대표하는 대한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 48년 전 발 디딘 용인대 또한 교수, 부총장을 거쳐 1994년부터 5회 연속 총장에 선임돼 우리나라 종합대학 사상 최장수 기록을 수립했다. 생애 대부분을 체육과 대학에 바쳐온 김정행의 인생 역정을 되짚어본다.

글∣이종세 스포츠포럼 공동대표

 

좌우명 초지일관실천…고교 때 유도 입문한 빗당겨치기 달인

그는 1943127일 월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월포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호가 월포인 이유다.

어릴 적부터 힘이 좋고 몸이 빨랐던 김정행은 포항 중앙초등학교와 포항중학교를 다니며 태권도, 럭비 등을 배웠다. 스포츠와의 첫 인연이었다. 1958년 포항 동지상고(현 동지고)에 진학한 뒤 포항 대신동 자택 부근의 한 사설도장에서 초대 포항시장을 지냈던 친구 아버지 문달식 관장으로부터 처음 유도의 기본인 낙법을 익혔다. 김정행은 이 때 사제간, 선후배간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유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 유도 6단의 문 관장을 존경해, 자신도 커서 훌륭한 유도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는 보다 전문적으로 유도를 배우기 위해 대구 대건고등학교로 전학했다. 그의 유도사랑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명 선수들이 초, 중학교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김정행의 유도 입문은 상당히 늦은 편. 기량 역시 시원치 않아 1961년 서울 소공동 대한유도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가까스로 초단을 땄다. 그래도 입학 동기생 50명 가운데 유도실력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으로 학업과 훈련에 정진, 1965년 수석 졸업과 함께 기량도 최고 수준이어서 모교에 남을 두 명의 조교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빗당겨치기의 달인으로 130kg의 거구도 이 기술에 걸리면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도쿄U대회 은메달 딴 국가대표 출신…세계선수권대회도 2번 참가

김정행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대한유도학교 조교 시절. 그 해 8월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 유도 -93Kg급에서 일본계 브라질 선수와 프랑스 선수 등을 가볍게 누르고 결승에 올랐으나 일본 선수에게 져 은메달을 땄다. 1969년 제6회 세계선수권대회(멕시코시티)1971년 제7회 세계선수권대회(독일 루드빅샤펜)에도 연속 나갔으나 입상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한국유도가 국제대회에 나갔다하면 몇 개의 금메달을 따오지만 그 때는 동메달 하나 건지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이후 김정행은 유도지도자로서의 경륜을 착실히 쌓았다. 1968년 서울시경 유도교관을 맡아 경찰관에게 유도를 가르쳤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유도 대표팀 감독 겸 대한유도회 지도위원으로 활약했다. 1982년 대한유도회 경기이사 1989년 전무이사 1992년 부회장에 올랐고 1995년 박용성 대한유도회장이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에 당선되자 그의 뒤를 이어 대한유도회장에 뽑혔다. 1997200120052009년에 이어 지난 1월까지 6회 연속 대한유도회장에 당선됐다. 대한체육회 가맹 58개 경기단체 가운데 유례가 없는 최장수 회장 기록이다. 김정행은 1982년 전미오픈 국제유도대회, 1990년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 1993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의 한국선수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

 

동아시아 연맹 회장 이어 아시아연맹 회장 겸 국제연맹 부회장 역임

김정행은 국제무대에서도 한국유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1986IJF 국제심판 자격을 취득한 뒤 1987년 아시아유도연맹(JUA) 경기위원장 겸 IJF 경기위원이 됐고 2000년에는 JUA 부회장에 선임됐다. 2003년부터 한국 일본 중국 등 9개국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유도연맹의 회장을 맡았다가 20114월 최종삼 대한유도회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20065월에는 JUA회장과 IJF부회장에 선출됐고 지난해 8월부터는 IJF 집행이사 겸 마케팅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정행은 지난 1월 유도 최고단인 10단에 올랐다. 생존한 우리나라 유도 10단은 장경순(90) 전 국회부의장과 이방근(89) 재미유도원로 뿐이다. 대학 졸업 때 4단을 취득한 것은 동기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이후 항상 최연소 승단을 기록했다. 49세인 1992년에 8, 59세인 2002년에 9단에 올랐던 것이다.

 

용인대 학생수 9천명의 매머드 대학으로 키워…11권의 저서도 남겨

1965년 대한유도학교 조교로 출발한 그는 48년째 용인대에서 근속하고 있다. 1970년 전임강사, 76년 조교수, 81년 부교수, 86년 정교수, 87년 유도학과장, 92년 부총장, 94년 용인대 제2대 총장을 맡았다. 그 뒤 19983, 20024, 20065, 20106대 등 다섯 차례 연속 총장을 연임했다. 지난 19년간 CEO(최고경영책임자) 총장으로 용인대를 이끌면서 학교를 6개 단과대학 38개학과, 8개 대학원 등에 학생 수 8천 여 명 규모로 키워냈다. 1994년 첫 총장 취임 당시 학생수가 4천 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교세를 갑절 가까이 키워낸 셈이다. 1953년 개교한 용인대는 올해 개교 60주년을 맞아 글로벌 대학으로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김정행이 있다. 그는 1982유도정복술을 비롯 1986유도개론’ 1994체육원리’ 2004초보자를 위한 유도교본11권의 저서를 냈다. 1989동서체육사상의 만남5권의 역서를 냈고 14건의 연구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대한체육회와는 1995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으로 인연을 맺어 1997년 법제상벌위원장,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 한국선수단 단장, 2005년 경기력향상위원장과 남북체육 실무회담 대표단장, 2008년 베이징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 20092014 인천아시아경기 조직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상훈으로는 1987년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부문 수상을 비롯 1992년 체육훈장 백마장, 1998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고 2003년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은장 수상, 2008IJF에 기여한 공로로 IJF 금메달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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